아이는 무엇으로 자라는가?

By: 도남희 (육아정책연구소 선임연구위원, 국제이주와포용사회센터 자문위원)


갑자기 궁금해졌다. 현재 우리 사회의 아이는 무엇으로 자라는 것일까? 누군가는 우스갯소리로 돈(양육비용)으로 자란다고 한다. 우리 부모님이 자랄 때처럼 배고프지도 않고, 우리가 자랄 때처럼 더 풍요로움을 꿈꾸며 허기를 달래지도 않는다. 사방을 둘러봐도 선택이 고민인 풍요로운 시대를 향유하고 있다. 단지 다르다면 아이를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편안히 바라볼 수 있는 주변의 따듯한 시선과 정성 어린 돌봄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모두 너무 바쁘고 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사회는 ‘유보통합’이라는 엄청난 과제 앞에서 영유아들을 둘러싼 학계, 어린이집과 유치원 관계자, 그리고 공무원, 전문가들이 반년째 머리를 맞대고 ‘아동 최우선의 원칙’을 논의하고 있다. 이 논의는 2012년부터 시작된 오래된 과제이다. 아이들이 통합을 원하는가? 묻고 싶다. 아이들은 자기들을 잘 돌봐주고 함께 할 수 있는 어른을 원할 뿐인데…..어른들은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걸까? 과연 유보통합을 하면 우리 사회의 영유아를 위한 돌봄의 질은 높아질까? 아이들이 더 잘 자라게 되는 걸까?
아이들은 아주 단순하다. 그리고 필요와 욕구를 채우면 웃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아이들도 예전보다 더 많은 것을 필요로 하고 더 많은 것을 알아야 하는 시대이다. 그래서 힘들어한다. 그리고 어른들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무엇인가를 준비해야 한다고 다독이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은 부모의 관심과 사랑에 부응하기 위해 열심히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

일찍이 미국의 경제학 교수인 낸시 폴브레(Nancy Folbre)는 돌봄에 대한 필요를 충족하는 것을 공급과 수요의 법칙에 의존할 수 없고 돌봄의 편익을 측정하는 것도 어렵다고 하였다. 그래서 돌봄과 관련된 산업에 대해 경쟁 압력은 돌봄의 질을 저하하는 효과를 가져온다고 경고하였다. 또한 그녀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과 반려동물과의 관계를 예로 들어 반려동물을 돌보는 주인은 돌봄을 제공하면서 더 만족감을 느낀다고 설명하였다. 실제로 반려동물을 키워본 사람이면 누구나 자신의 반려동물을 생각하며 미소 지으며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더 나아가 아이들은 그러한 만족 이상의 것을 제공하고 사회에 편익을 베푸는 공공재임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국가는 가족에 대한 지원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아이와의 교감을 통한 돌봄이 수반되어야만 아이도 만족하고 그것을 제공하는 성인은 더 만족할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가정에서 아이를 사랑과 의무로서 돌보고 있는가? 아이를 돌보는 기관에서 사랑과 의무로서 돌보고 있는가? 우리들의 돌봄의 행위들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성인과 부모는 아이를 보살피고 키우는 것의 가치에 대해 공감하고 있는 사회인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최근 우리 사회의 돌봄에 대한 인식의 높아지고 다양한 연령대의 돌봄이 논의되고 있으며 생애주기에 맞는 돌봄의 제공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국가의 책임이 되고 있다. 최근 유아교육과 보육은 공공성에 대해 강조하면서 접근성을 높이고 있고 아이돌보미 등 영유아를 돌보는 가정에 대한 지원도 그 어느 때보다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자녀를 키우기 힘들다는 소리가 들리고 정부의 확대되는 보육 지원에 상관없이 육아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왜 다양한 형태의 지원과 인력이 수반되고 있는데, 만족도는 그리 높지 않을까?
일찍이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는 자신의 소설에서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세 가지 질문을 통해서 답을 구하려고 하였다. 마찬가지로 나는 ‘아이는 무엇으로 자라는가’ 라는 질문을 통해 돌봄의 궁극적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이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