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나라는 되찾을 수 있지만 소멸된 나라는 되찾을 수 없다” – 2023 대한민국 인구포럼을 다녀와서
“빼앗긴 나라는 되찾을 수 있지만 소멸된 나라는 되찾을 수 없다” – 2023 대한민국 인구포럼을 다녀와서
합계출산율 0.78의 시대
2023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언급한 키워드 중 하나는 아마도 ‘인구’문제일 것이다. 세계적으로 이례없이 낮은 출산율과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고령화는 과거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루어 전 세계가 주목했던 것과 함께 전 세계의 이목을 대한민국으로 집중시키는 또 하나의 이슈가 되었다. 해외 학술대회에 참석해 보면 외국인들도 십중팔구 ‘한국의 저출산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노동시장의 성차별 연구로 2023년 노벨상 경제학을 수상한 클라우디아 골딘(Claudia Goldin) 교수도 한국의 저출산 문제를 정확하게 언급하기도 하였다.
한국의 저출산 문제가 어느 날 갑자기 수면 위로 나타나 급한 불 끄듯이 해결하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지난 십 수년간 지속적으로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정부에서는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며 2006년부터 2022년까지의 16년이라는 기간동안 280조의 예산을 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해 투입했다고 하는데 출산율이 상승하기는커녕 분기별로 가장 낮은 출산율을 갱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합계출산율이 0.78로 낮아졌다는 발표는 다시 한번 모두를 놀라게 했고, 인구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시급하게 논의가 되고 있다. 이는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의 합계출산율보다도 낮은 수치이기도 하다.
실제로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문제는 해가 거듭날수록 가시화되어 이제는 피부로 느낄 정도가 되었다. 부모에게는 아이를 맡길 어린이집이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재정난을 버티지 못해 폐원하는 어린이집이 증가하고 있고, 지방에는 이미 젊은이가 없어 소멸의 위기에 처해 있는 곳들이 빈번하여 어떻게 하면 지역을 재생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며, 이제는 지방으로의 이주까지는 아니더라도 ‘농촌유학’ 경험이라도 해 보라며 방향성을 바꾸고 있다. 가까운 거리에 소아과나 산부인과가 없는 곳도 많을뿐더러, 소아과에서는 백신을 들여와도 백신 유통기한보다 어린이가 방문하는 기간이 더 길어 백신을 들여놓지 못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제조업, 건설업계에서는 젊은 일꾼이 사라져 노동력이 고령화됨과 동시에 젊은 노동력은 이주노동자로 채워진 것이 하루 이틀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추석 연휴 때에는 강원도 고성으로 여행을 갔는데, 숙소의 직원이 모두 베트남 사람이고 주위 논밭의 일꾼도 모두 동남아 출신밖에 보이지 않아 잠시 이 곳이 ‘우리나라가 아니라 베트남인가?’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개인적으로는 오랫동안 해외 생활을 하며 다문화를 지향하는 것에 큰 거부감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소 생경한 풍경이었다.
필자가 속해있는 대학의 컨소시엄 사업단 주제도 “인구구조 변화에 대한 생활세계와 대응”이라는 대주제 아래 ‘저출산/고령화’, ‘다문화’, ‘지역활성화/재생’, ‘사회갈등/사회통합’, ‘삶의 질 향상’이라는 소주제들로 이루어져있는 것도 이러한 우리나라의 인구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이와 같은 대학 간 컨소시엄 교육을 통해 대학생들에게 인구문제에 대한 위기의식을 함양시키고, 변화하는 인구구조의 사회에서 필요한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자는 취지에서 본 사업단이 운영되고 있는데, 본 사업단을 통해 교육을 받은 대학생들이 다시 사회에 나가서, 그리고 초·중·고 학생들에게 인구교육을 진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처럼 대학생뿐만 아니라 초등학생에게까지도 인구교육을 시행한다는 것은 그만큼 문제가 시급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인구문제에 대한 위기의식은 학계 및 정계에서뿐만 아니라 기업에서도 관심을 기울이는 주제가 되었는데, 그 중 보건복지부와 CBS가 공동으로 개최한 “2023년 대한민국 인구포럼”에 참석하며 인구문제에 대한 사회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출처: 2023 대한민국 인구포럼 홈페이지 https://kpforum.kr/t/lastevent_view.asp?key=6.jpg]
정책의 실패 인정, 사회시스템의 구조적 결함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김영미 부위원장은 저출산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였다. 그 원인은 입시경쟁 위주의 교육, 경직적·가족 비친화적·가부장적 문화, 이중노동시장, 과도한 집값, 수도권 집중, 가족 가치의 위기, 공동체 결속 약화, 초경쟁의식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있다. 다른 나라 도시들과 비교했을 때, 자녀를 기쁨보다 부담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서울이 1위로 나타났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자녀를 양육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그리고 왜 저출산이 지속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아울러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2023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혼 여성의 45%가 ‘아이를 낳지 않겠다’라고 했으며, 저출산의 원인으로는 ‘일과 가정 양립의 어려움’이라는 응답이 21%로 가장 많았다. 또한 낳는 것도 어렵지만, 잘 키워야 한다는 육아에 대한 부담을 가진 사람이 29%에 달하여, 여성의 입장, 특히 일하는 여성의 입장에서는 ‘출산’이라는 과업을 생애주기의 하나의 단계로 받아들이는 것이 장애물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제는 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 혼자의 노력으로는 어려우며, 무엇을 함께 해 나가야 하는지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김영미 부위원장은 이를 위해 백화점식 부처사업대신 인식, 가치관, 문화 변화 등을 반영한 실효성 있는 정책을 선택하는 것이 필요한데, 아무리 좋은 정책이 만들어져도 그 정책이 시행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으므로 현장에서 작동될 수 있도록 모두가 같이 노력해야 한다고 정부를 대신해 부탁하는 말을 전하였다. 그녀가 인용한 표현대로라면 “빼앗긴 나라는 되찾을 수 있지만 소멸된 나라는 되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인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은 무엇을 하는가?
정부는 국민을 위한 정책을 만들고, 국가를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다. 국가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가 국가 전체 또는 각 지자체에 맞는 정책을 만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가 있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이러한 사각지대를 이제는 기업들도 함께 해결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미 많은 기업들이 내부적으로는 일-가정 양립을 위해 결혼축하금, 난임부부 지원, 출산지원금, 육아휴직제도, 육아기 유연근무제 등 다양한 종류의 가족친화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출산과 육아를 지원하는 제도는 주로 사내 구성원을 대상으로 하지만, 보육지원이나 고령층 지원, 1인가구 지원 등은 사회적 공헌으로 실천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금융회사에서는 디지털 뱅킹의 보편화로 인해 금융 이용에 불편을 겪는 어르신들을 위한 서비스를 진행하기도 하고, 보이스피싱에 취약한 계층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하기도 한다. 매일 유업에서는 독거노인 어르신들에게 무상으로 우유배달을 하는데, 이를 통해 어르신들의 영양을 챙길뿐 아니라, 혹시라도 다음 날 우유가 수거가 되어 있지 않으면 사고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관련 기관에 연락을 해 조치를 취하게 하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화장품 회사로 ‘사람을 아름답게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을 소명으로 삼고 있는 아모레퍼시픽은 회사 설립 초기부터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기회를 제공한 것을 시작으로, 유방암 캠페인, 한부모 지원 등 다양한 사회적 공헌을 해 왔는데, 최근에는 증가하는 1인 가구 청년층 여성을 대상으로 자기돌봄을 할 수 있도록 AI를 활용하여 미래의 나와 만나 대화를 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혼인건수는 역대 최저이지만, 건강한 가정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결혼정보회사는 만남에서의 리스크를 줄이고 효율적인 선택을 하기를 원하는 MZ 세대 사이에서는 오히려 호황이라고도 한다. 이와 같이 이제는 인구문제, 가족문제가 개인 또는 공공의 영역이라는 사고에서 벗어나 많은 기업들이 함께 해결하기 위해 기업의 특성에 맞는 프로그램 등을 시행하고 있다. 제도적으로는 대기업이나 공기업에서는 이제는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육아휴직사용과 같은 가족친화적 제도는 중소기업에게는 활성화되지 않은 곳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규모를 떠나 기업 문화는 가족친화적 문화로 서서히 바뀌고 있으며, 앞으로는 바뀔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고 있다.

[출처: 2023 대한민국 인구포럼_인구와 기업, 그리고 성장, 노컷 유튜브 채널 https://www.youtube.com/watch?v=Y30QusNJ2jE ]
스타트업은 인구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인 블루포인트파트너스의 이용관 대표는 스타트업이야말로 인구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라고 한다. 혹자는 스타트업이 어떻게 인구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의아할 수도 있지만, 그는 인구문제와 마찬가지로 큰 문제이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것이 기후문제라며 한 가지 예를 들었다. 기후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기업에서 제공한 솔루션 중 하나로 GM이 캘리포니아 주정부와 협약을 맺어 전기차를 상용화하려고 했으나 결국에는 실현되지 않았는데, 스타트업인 테슬라가 세계 최초의 전기 스포츠카를 출시하며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였다는 것을 예로 들며, 인구문제도 이와같이 스타트업이 실마리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용관 대표는 시장의 크기는 문제의 크기이고, 문제의 크기가 클수록 오히려 큰 기회가 있는데, 다른 문제와 달리 인구문제가 해결하기 어려운 이유는 당위성이나 가치는 높지만 경제성과의 갭이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인구문제적 접근을 고객 중심적 접근으로 바꾸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Demographic Product Market Fit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방법론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직면한 인구문제, 특히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스타트업들이 많이 생겨날 수 있기를 바란다.

[출처: 2023 대한민국 인구포럼_인구와 기업, 그리고 성장, 노컷 유튜브 채널 https://www.youtube.com/watch?v=Y30QusNJ2jE ]
모두가 행복한 사회로 만들어야
최근 20대 청년들과 만난 자리에서 어느 한 청년이 한 말은 저출산이 단순히 경제적, 사회적 구조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게 해 주었다. 그녀는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결혼도 크게 생각이 없지만, 결혼을 하더라도 자녀를 가질 생각은 없는데, 그 이유는 경제적 이유나 집값, 경쟁사회 등과 같은 이유보다도 환경적인 이유가 가장 크다는 것이다. 기후·환경문제는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텐데, 그런 열악한 환경적 조건 속에서 본인의 2세를 살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그녀가 자녀를 낳지 않겠다고 결심한 이유였던 것이다. KDI 국제정책대학원의 최슬기 교수는 요즘 청년들이 자녀를 낳지 않는 이유는 자녀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자녀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낳지 않는다고도 설명했는데, 바로 그런 사례였던 것이다.
합계출산율 0.78이라는 숫자는 단순히 자녀를 낳지 않는다는 통계적 의미 이상을 보여주는 수치이다, 실제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이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수많은 목소리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 정부는 출산지원금, 양육수당에 이어 2024년부터는 부모급여까지 확대한다는 현금성 지원을 꾸준히 늘리고 있지만, 주위의 그 어느 누구도 정부로부터 돈을 받기 위해 출산을 한다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우스개소리로 2024년에 태어나는 아이는 부모급여가 매월 100만원씩 지급되므로 태어날 때부터 연봉 1200만원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말도 들리지만, 월 100만원을 받기 위해 출산을 결심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출산과 양육은 그 이상의 경제적 비용을 비롯하여 다른 수많은 조건을 필요로 하는데 말이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부의 현금성 지원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개인과 정부, 그리고 기업이 모두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한때 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해 결혼이주여성을 유입하였지만, 그들도 초기에는 내국인보다 합계출산율이 높다가 시간이 지나며 내국인과 합계출산율의 차이가 적어진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기도 하다.
자녀를 낳고 키우는 것은 월 100만원 수입 이상보다 더 큰 가치가 있는 일이고, 월 100만원 지원금이 없더라도 출산과 양육을 하겠다는 각오와 희생을 감수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나 젊은층에게 출산과 양육이 각오와 희생만이 따르는 ‘의무’가 아닌, ‘행복’의 의미로 더 크게 다가갈 때, 그리고 본인 스스로가 세상은 ‘살기 힘든 곳’이 아니라,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느낄 때 비로소 기쁘게 본인의 생애과업을 수행하고, ‘나’보다 더 사랑하는 미래에 태어날 나의 자녀들에게 세상을 살아갈 기회를 주고자 할 것이다. 2023 대한민국 인구포럼 글로벌편에서 기조연설을 한 위스콘신대학교의 Karen Bogenschneider 교수는 대한민국도 출산율이 반등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라고 하였다. 그녀의 메시지가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그 어느 누구도 대한민국이 소멸하기를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