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난민87’, 난민 소년들의 탈출 여정에 동행하다
소설 ‘난민87’, 난민 소년들의 탈출 여정에 동행하다
소설 ‘난민87’, 난민 소년들의 탈출 여정에 동행하다
강민석 (연구원)
『난민87』은 14살의 소년 시프가 난민이 되어 지중해를 건너는 보트에 오르기까지의 여정을 담은 소설이다. 주인공 시프와 친구 비니는 옆집에 사는 절친한 친구로, 수학 문제를 풀고 체스 두기를 좋아하며, 각각 엔지니어와 의사가 되길 꿈꾸는 평범한 소년이다. 평소와 같은 일상이 계속되던 어느 날, 비니는 갑자기 학교에 나오지 않기 시작하고, 시프는 죽은 줄 알았던 아빠가 아직 살아있으며, 정부기관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수용소에 끌려간 후 소식이 끊겼다는 이야기를 엄마로부터 전해 듣는다. 그러곤 군사학교 차출과 강제노역 동원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두 소년 모두 다른 나라로 떠나기로 결정한 날, 군인들이 새벽같이 집 안에 들이닥치더니 이들을 납치하여 사막의 수용소에 감금한다. 소설의 많은 부분은 두 소년의 수용소 생활과 탈출, 그 이후 난민이 되어 피난하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소설의 제목 『난민87(원제: Refugee87)』은 얼핏 보면 먼 미래의 인류나 기계인간, 복제인간 등에나 붙여질 법한 명칭인 듯하나, 여기서 숫자 ‘87’은 주인공 시프가 수용소에서 받은 수용자 번호를 가리킨다. 87번 수용자. ‘난민87’이란 지칭이 암시하듯, 소년들은 수용소 내에서 각자의 인간성, 개성, 인격, 주체성이 모두 소거된 채, ‘xx번 수용자’로서,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서만 존재한다. 넓은 맥락에서 볼 때, 소설 제목 『난민87』은 비단 소년들의 수용소 내 생활만을 함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계 어느 국가, 지역, 사회에 닿게 되든지 인간 존재이기 이전에 심사, 경계, 통제, 관리의 대상으로서 먼저 인식되는 난민 존재 전체를 제유하는 것이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챕터부터 마지막 챕터까지는 평범한 일상을 살던 주인공 소년 시프와 친구 비니가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수용소에 감금되고, 다른 수용자들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하며, 국경을 넘어 지중해를 건너는 보트에 타기까지의 과정이 시간 순서대로 구성되어 있다. 시프의 시선을 따라 책장을 넘기다 보면 평범한 소년이 난민이 되기까지 겪는 사건들을 차례로 짚어 알 수 있고, 그 여정 속에서 소년이 느끼는 분노와 두려움, 공포, 긴박함, 슬픔과 같은 감정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이입하여 느낄 수 있다. 비교적 쉬운 문체로 쓰이고 번역되어 마음만 먹으면 쓱 읽어낼 수도 있을 듯했지만, 쉬이 넘기기엔 소년들의 여정이 너무도 힘에 겨워, 차마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멈출 수밖에 없던 지점들이 많았다.
소설을 통해 접한 난민의 이야기는 그간 언론보도와 논문, 사진, 난민 지원 단체에서 게재하는 소식들을 통해 주로 접해온 난민들의 이야기와는 사뭇 결이 다르게 느껴졌다. 다른 매체를 통해 난민의 이야기를 접할 적엔, 저 멀리 해외에서 일어나는 일이건 가까운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이건, 대개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타인들의 소식을 거리를 두고 전해 듣고 지켜보는 관찰자로서의 느낌을 받았다면, 소설을 읽는 동안엔 내가 직접 난민 소년의 입장이 되어, 소년의 경험과 생각이 마치 내가 주체로서 직접 겪는 경험과 생각인 것 마냥 느껴졌다. 직접 당사자가 된 것은 아니었지만, 난민의 입장을 부분적으로나마 체험함으로써, 난민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폭을 조금은 넓힐 수 있었다.
소설 속의 시공간적 배경은 구체적으로 특정되어 있지 않다. 소설 속 인물들이 북쪽의 국경을 넘고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가길 희망한다는 점에서 아프리카 대륙 어느 국가의 이야기일 것이라 미루어 알 수 있을 뿐이다. 다만, (군사)독재 정권 하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은 역모자라는 오명 속에 수용소에 무기한 구금되고, 군의 정보원이 도처에 있어 그의 가족들을 감시하고 검속하며, 해외로 피난하지 않으면 군사학교로 차출되거나 강제노역에 시달리는 등 박해를 당하는 일이 일상과 같은 시간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관계없이 소설과 동일한 시공간에 놓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난민의 주요 발생국인 시리아, 베네수엘라, 아프가니스탄 등의 국가들도, 1948년 즈음의 여수, 순천, 제주와, 1980년의 광주, 1980년대 민주화 이전의 한국도, 2022년 현재 군부 쿠데타에 저항하여 민주화를 염원하는 미얀마도 마찬가지로 소설 속 시공간의 연속선상에 위치해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소설 속 시프의 이야기가 단지 지구 상 저 먼 곳에서 벌어지는 남의 일이 아니며, 언제나 어디에서나 ‘지금, 여기’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다시금 상기하게 된다.
소설 속 인물들의 삶과 여정이 지구 상 난민의 삶과 여정의 전형이라 보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난민마다 출신국을 떠난 사유, 이동 중에 겪는 경험 등이 저마다 다를 것이며, 따라서 소년 시프가 겪는 몇몇 경험과 사건들은 실제 난민의 사연과 중첩될지도, 전혀 관련이 없을지도 모른다. 소설 속의 몇몇 에피소드와 주인공의 입장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난민의 상황을 충분히 알고 이해했다고 하긴 어려운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 내의 난민들을 떠올릴 때, 저마다 출신국을 떠나온 이유는 무엇이며, 출신국을 떠나 겪었던 경험들은 어떠했으며, 난민캠프에 혹은 난민 지위 신청국에 도착해서 느낀 감정과 생각은 어떠했을지를 상상해본다면, 소설 속 시프의 관점을 취해 체험한 간접 경험은 ‘우리’의 이해와 공감의 폭을 조금은 확장시켜 줄 것이다. 그리고 저마다 혹독하고 험한 과정을 거쳐 ‘우리’ 곁으로 온 난민들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냉대와 높은 환대의 문턱을 돌이켜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의 시점을 취하여 당사자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이 최선은 아닐 테지만, 적어도 난민이 ‘우리’와 결코 무관한 존재가 아님을 상기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 자각들이 ‘우리’ 안에서 공유될 수 있다면, 난민에 대한 ‘우리’ 사회의 환대의 문턱도 조금은 낮아지진 않을지, 2018년 예멘 난민의 입국 당시 만연하던 냉대와 혐오에서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을 발견하게 되진 않을지 생각한다. 소설은 소설일 뿐이겠지만, 소설을 통해 확장된 이해와 공감의 폭은 난민에 대한 환대와 연대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모쪼록 많은 분들이 『난민87』을 통해 조금이나마 난민을 알고 이해하고 공감하며, 그러한 개인의 경험들이 모여 보다 큰 환대와 연대로 이어질 수 있길 희망한다.
*신형철 평론가는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서울: 한겨레출판, 2018)에서 장애인을 객체로 보는 ‘우리’의 무능력함을 이야기하면서, 역설적으로 ‘우리’라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는 말의 한계에 대해 “‘우리’(이 말의 폭력성을 용서해주길)”이란 주석을 덧붙인 바 있다. 본문 내 ‘우리’라는 단어의 사용 또한 보다 적확한 단어를 찾지 못한 필자의 부족함으로 인한 것임을 외람되게나마 적어 남긴다.
지중해 난민 보트 사진 출처 : © UNHCR/Giuseppe Carotenu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