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호모 사케르(Homo Sacer)’의 탄생?

By: 최정화 (CTMS 연구인턴)


월급 100만 원의 이주가사노동자를 도입하는 가사근로자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는 시점에 이주가사노동자의 실태를 살펴보고 노동권이 보장될 방안을 논의한 <이주가사노동자의 현실과 노동권 보장방안 국회토론회: 국내 이주가사노동자 사례발표와 실태, 홍콩의 시사점>이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국제가사노동자의 날(6월 16일)에 진행된 이번 토론회는 이주가사노동자인 솔리타 도밍고 무니지트씨의 “이주노동자의 노동현실” 사례 발표로 시작되었으며, 최혜영 일하는 여성 아카데미 연구위원의 “국제 기준 및 법 제도 정비 실태와 해외 이주가사노동자의 현실: 홍콩 사례를 중심으로”, 그리고 김양숙 플로리다 아틀란틱 대학 사회학과 교수의 “존엄과 생존을 위한 중국동포와 비이주민 가사노동자의 저항” 발표로 이어졌다. 이후 김혜정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사무처장, 박명숙 전국가정관리사협회 교육정책위원장,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임선영 국가인권위원회 이주인권팀장, 그리고 이재인 외국인력담당실 서기관이 열띤 토론을 진행했다.

그림 1. 토론회 포스터 (출처: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이주가사노동자 제도’, 무엇을 위한 것일까?  

이주가사노동자 제도는 우리나라의 초저출산 대책 일환으로 제기되었다. 지난해 한 여성이 가임기간 동안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를 뜻하는 합계출산율이 0.78명의 역대 최저 수치로 21년 OECD의 평균 합계출산율인 1.58명과 비교했을 때도 우리 사회가 매우 심각한 인구감소 현상을 마주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국가 소멸 상황의 위기에서 현 정부가 내세운 카드 중 하나가 바로 ‘이주가사노동자’ 제도이다. 초저출산의 주요 원인인 육아 부담을 ‘저렴한’ 가사노동자로 낮춰 주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이를 위해 현재 가사, 돌봄 분야에는 동포, 한국 영주권자의 배우자, 결혼이민 비자로 입국한 장기 체류 외국인만 취업이 가능한데 앞으로 동남아시아 출신 비숙련 외국인 근로자(E-9) 역시 해당 분야에 일을 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와 서울시는 올해 하반기 100가구를 시범적으로 가사, 육아 노동에 대한 이주가사노동자 도입 계획을 밝혔다. 정부는 우리 보다 일찍이 이주가사노동자 제도를 도입한 싱가포르와 홍콩을 참고 사례로 들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토론회 참여자는 ‘현대판 노예제’라고 불리는 홍콩과 싱가포르의 이주가사노동자 정책은 적절한 사례가 아님을 강력히 주장한다. 최혜영 연구위원에 따르면 실제로 홍콩의 이주가사노동자는 주당 노동시간, 최저임금에 대한 규정 없이 하루 16시간 노동을 하고 있으며, 46.3%가 신선하지 않은 음식, 남은 음식 등 부적절한 식사를 제공받고, 55%이상이 신체적, 언어적, 정신적 학대를 경험한 바 있다. UN과 ILO 등 국제사회가 이주가사노동자의 불리한 노동 조건 개선을 지적한 상황에서 홍콩과 싱가포르의 사례를 도입하려는 정부의 기조는 제고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해당 제도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이주가사노동자 제도는 돌봄 영역에서의 수요-공급 불일치, 육아에 대한 경제적 부담을 ‘값싼 노동력’으로 해결한다는 발상에서 출발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가사서비스를 이용 중인 수요 가구의 경우 내국인 가사근로자 고용 시 통근형은 시간당 1만 5,000원 이상, 입주형은 월 350만~450만 원(서울 기준)을 부담하고 있다. 월 100만 원 이주가사노동자 내용이 담긴 가사근로자법 개정안이 발의된 이유도 여기에 있는데 해당 금액이 중산층 가정이 이용하기엔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국내 가사도우미는 가사근로자와 가사사용인으로 나뉘며, 후자인 가사사용인은 최저임금법 등 노동 관련 법안 적용에 포함되지 않는다. 가사근로자법 개정안은 이주가사노동자를 가사사용인으로 간주하여 최저임금을 지급할 필요가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와 관련 조혁진 연구위원은 최저임금법 제7조(최저임금의 적용 제외) 조항과 근로기준법 제11조(가사사용인 제외) 조항 삭제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저렴한 노동력을 찾기 전에 내국인 인력부족의 원인부터 짚을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낮은 임금, 장시간 노동, 과도한 노동강도를 특징으로 하는 일자리의 노동자는 언제든 떠날 수 있기에 구조를 재정비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며, 단순히 저임금 인력을 찾는 것은 인력 돌려막기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한편, 박명숙 교육정책위원장은 저임금 이주가사노동자 도입 정책은 돌봄 노동, 특히 가사노동을 하찮은 일로 치부하게끔 한다고 지적했다. 오랜 시간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그림자 노동자’로 불린 가사노동자는 작년 ‘가사근로자법’ 개정으로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 등의 보호를 받는 근로자로 인정받게 됐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국내 가사노동자들이 가사법을 적용 받지 못한 채 비공식노동자로 남아 있다. 가사노동을 양질의 일자리로 자리매김하고 참여를 유인해야 할 시점에 저임금의 이주가사노동자 도입은 돌봄의 공공성을 해치고 가사노동자의 업무를 낮은 임금과 불안정하고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내몰리게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주가사노동자가 일하는 ‘공간’의 특수성 역시 신중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이주가사노동자는 외부시선에 노출되지 않는 사적 공간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이들에게 가해지는 (성)폭력의 위험, 시간 외 노동 착취 등이 간과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김혜정 사무처장은 이미 한국에서 가사노동에 종사하고 있는 이주여성노동자의 열악함을 설명하면서 더욱 낮은 임금의 이주가사노동자 제도를 논의하는 것은 이들의 노동조건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마지막으로 참가자들은 정부가 초저출생, 돌봄 공백 문제에 있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회피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육아휴직, 긴급휴가, 어린이집 확충 등 돌봄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보다는 이주노동자를 착취함으로써 사적 가사, 돌봄으로 저출생을 해결하겠다는 태도는 지양할 필요가 있음에 공감대를 이뤘다.

그림 2. 토론회 참석자 (출처: 윤미향 의원실)

새로운 호모 사케르의 탄생?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지오 아감벤(Giorgio Agamben)은 희생제물은 아니지만 살해당했을 경우 아무도 그 살인의 책임을 지지 않는 존재, 즉 법의 영역에서 배제되어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존재를 ‘호모 사케르(Homo sacer)’ 라 말한다.

가사근로자법 개정안은 이주가사노동자를 차별적으로 대우해도 되는 여지를 계속 남겨 두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이들을 우리 사회의 ‘호모 사케르’로 만들고 있다. 차별금지법, 안전한 이주 보장, 산업재해 인정 등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법과 제도가 충분히 마련한 뒤 이주가사노동자 제도 도입을 논의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가 아닐까 싶다.

더불어 저임금 이주가사노동자들의 등장은 내국인 가사노동자가 오랜 기간 투쟁으로 이뤄온 노동조건 개선도 위협할 소지가 있다. 이주가사노동자에 대한 차별적인 정책은 가사노동 자체를 폄하하는 태도, 결국 내국인 가사노동자들에 대해서도 저임금을 받으면 되는 일이라고 보는 시각이 전제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가사노동자 뿐만 아니라 돌봄 인력이 필요한 여성 고용자 역시 해당 제도에서 배제될 수 있다. 월 100만 원도 지급하기 힘든 저임금 여성의 경우 돌봄 공백과 이중 노동에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돌봄의 공공성이 아닌 돌봄의 외주화를 추진하는 것은 개별 가정에 돌봄과 재생산의 부담을 가중시킬 수밖에 없다.

충분한 검토와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이주가사노동자 제도는 주권자의 끊임없는 결정 속에서 추방 상태로 살 수밖에 없는 다양한 유형의 ‘호모 사케르’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 더 나아가 해당 제도가 돌봄 공백을 메우고 저출생을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여전히 커다란 의문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