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비타 람다스(59)는 세계적인 여성운동가다. 인도 해군 제독의 딸로 태어난 람다스는 인도, 영국, 독일, 미얀마를 돌며 컸다.
세계적 여성운동가 카비타 람다스에게 물었다.
카비타 람다스(59)는 세계적인 여성운동가다. 인도에서 태어난 그는 해군 제독인 아버지 밑에서 인도, 영국, 독일, 미얀마를 돌며 컸다. 사진은 2019년 10월 30일 김해 인제대학교에서 열린 “김해의 다문화사회와 돌봄” 국제회의에 참여한 모습. 제공 서울대 국제이주와 포용센터
그가 열 한 살 때, 그의 고모는 남편과 사별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런 와중에 주변에선 “여자 때문에 남자가 죽었다”며 고모를 죄인 취급했다. 고모를 지켜줄 줄 알았던 친척은 오히려 고모에게 달려가 긴 머리를 잘라버리고 흰색 사리를 강제로 입혔다. 고모는 결혼한 여자가 이마에 붙이는 빈디(Bindi)도 할 수 없었다. 평생 군인으로 전쟁터에서 나라를 지킨 그녀의 아버지는 자기 누이의 인권은 지키지 못했다.
고모의 슬픈 인생을 보며 그는 페미니스트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대학 때는 경찰이 17세 소녀를 부모가 지켜보는 앞에서 성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권력 있는 남성의 성폭력은 죄가 되지 않는 때였다. 그는 "사회를 바꾸겠다"며 거리 시위에 나섰다. 이후 세계여성기금(Global Fund for Women) 대표 등 각종 여성단체에서 일하며 여성운동에 헌신했다. 지난 2009년 여성운동을 주제로 한 그의 테드(TED) 강연은 23개 언어로 번역돼 57만 명이 넘는 사람이 봤고, 그의 이름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그는 “페미니즘은 여성만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다. 성별, 인종과 관계없이 평등하고 자유롭길 바란다면 누구나 페미니스트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결혼생활도 예사롭지 않다. 가족의 생계는 람다스가 담당하고 남편은 육아와 살림을 도맡아왔다. 1995년 20명의 여성대표와 함께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세계여성회의에 참석했을 때 당시 생후 18개월이었던 딸은 남편이 돌봤다고 한다. 더구나 그의 남편은 파키스탄 출신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종교, 영토를 두고 분쟁이 끊이지 않은 앙숙 사이다. 람다스의 아버지는 파키스탄과의 전쟁에 세 번이나 참전했다.
2019년 10월 30일 김해 인제대학교에서 열린 “김해의 다문화사회와 돌봄” 국제회의에서 카비타 람다스가 연설하고 있다. 제공 서울대 국제이주와 포용센터
이 결혼이 가능했던 것은 자유를 향한 딸의 투쟁에 아버지가 변했기 때문이다. 누이를 지키지 못했으나 딸만큼은 자유로운 세상에서 살길 원했다. 파키스탄인 사위를 받아들였고 돈을 벌지 않고 살림을 하는 것도 이해하게 됐다. 람다스는 남성의 변화와 지지가 페미니즘 운동에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그는 오픈 소사이어티 재단(Open Society Foundation·OSF)에서 여성권리 프로그램 디렉터를 역임하고 있다. 다음 달 3일에는 서울대 국제이주와포용사회센터가 진행하는 학술 대회(코로나19와 돌봄 경제 : 지속가능한 돌봄 경제로 전환)에 연사로 참석한다. 직접 한국에 올 수는 없지만, 온라인 화상 회의 프로그램을 통해 돌봄 경제와 젠더 평등에 관해 설명할 예정이다. 람다스에게 한국에서 벌어지는 젠더 갈등과 그 해법에 관해 물었다.
최근 한국에서 벌어지는 젠더 갈등에 대해 알고 있나?
알고 있다. 지난 2019년 서울대에서 강연한 적이 있다. 이때 많은 학생이 이 문제를 제기했다. 그들은 페미니스트라는 용어에 불편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남녀 갈등이 있을까?
물론이다.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비슷한 문제를 볼 수 있다. 젊은 남성이 제기하는 우려는 주로 경제적 압박감과 관련이 있다. 전 세계의 여성은 짧은 기간에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간 수많은 투쟁이 있었다. 몇몇 국가에서 “여성에게 특별한 일자리를 줄게”, “여성을 위한 공학 대학을 만들게”라고 했다. 이제 여성도 로켓 기술자가 될 수 있고 의사를 할 수 있다. 한때는 남성만이 경쟁하던 공간에 여성이 참여했다. 이는 위협으로 느껴질 수 있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부분은 그동안 ‘우리’(여성)가 충분히 일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젊은 남성의 분노가 어디에서 오는지는 이해할 수 있으나 그 분노의 방향을 여성이나 페미니즘에 돌려 비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젊은 층에서 페미니즘과 안티 페미니즘 모두 극단적인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자신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 소리를 지르거나 고함을 지르는 건 좋은 방법은 아니다. 상대의 관점을 제대로 듣고 그들의 분노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그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우리에게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젊은 남성들의 분노와 혐오, 폭력일 수 있지만 더 가까이 귀 기울여 들어보면 그것은 그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한 표현일 수 있다. 적개심과 분노는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한국의 20대 여성이 남성처럼 군대에 간다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까?
한국의 젊은 남성은 의무적으로 군 복무를 해야 하고 이는 그들에게 육체적, 정신적, 정서적으로 매우 높은 비용이 드는 일이다. 실제로 젊은 남성들이 (군 복무가) 경제적 손해라고 느낀다. 여기서 "왜 젊은 여성들이 군 복무를 하지 않는가? 우리가 남녀평등을 이야기한다면 당연히 군 문제도 평등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여성도 군 복무를 해야 한다고 접근하는 것이 최선일까. 국가를 위한 봉사가 반드시 군 복무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의료나 교육서비스 분야에서도 국가를 위한 봉사를 할 수 있다. 이는 여성에게 한정한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남성과 여성 모두 모두 국가를 위한 봉사를 선택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누군가는 호르몬의 차이를 얘기하지만 저는 성 역할이 고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폭력적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군대에 가고 싶지 않은 남성도 있을 수 있고, 오히려 ‘군대 체질’인 여성도 있을 수 있다. 이스라엘에서는 남녀 모두 같은 기간 군 복무를 한다. 이보다 중요한 건 여성의 군 복무가 (남녀갈등) 문제 해결에 있어서 본질인지 고민해야 한다. 한국의 젊은 남성과 여성은 그들의 미래를 함께 정의할 기회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국가는 그들에게 출산과 군 복무를 요구했다. 그러나 국가에 봉사하는 방식이 전 국민의 군인화 뿐인지 고민해야 한다. 성별의 구분 없이 모두 국가에 봉사할 많은 방식이 있다는 인식으로 나아가야 한다.
한국의 20대 남성들 사이에선 '한국 여성들이 다른 나라 여성들보다 혜택을 누린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한국은 빠른 속도로 경제 성장을 이뤘고 성별과 관계없이 교육에 우선순위를 뒀다. 한국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다른 국가와 비교해 경제 성장으로 인한 교육과 문화의 혜택을 누렸다. 특히 한국의 유례없이 성공적인 경제 성장은 헌신적으로 일하는 남성이 대가를 치른 기간에 완성됐다. 다만 남성들이 그렇게 열심히 일할 수 있었던 건 뒤에서 일하는 여성들 또한 매우 긴 시간을 힘들게 보냈다는 의미다. 아이를 돌보고, 가족을 돌보고 집을 치우고, 음식을 하는 등 ‘돌봄 경제’라 부르는 모든 것을 했다.
‘돌봄 경제’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유가 뭔가
동아시아 호랑이(한국)의 기적은 남성의 ‘미친’ 노동으로 이뤄졌다. 그 뒤엔 그들의 어머니, 고모, 누나 즉 여성이 있었다. 남자들은 음식을 차리고, 집을 치우고, 아이의 숙제를 검사하고, 피아노 학원을 보내는 일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퇴근하면 그 일은 ‘마법’처럼 처리됐다. 이 일을 영원히 할 것 같았던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이제 여성들은 그들의 할머니처럼 그 일을 하지 않는다. 지난 2018년에 스페인에서는 여성이 전국적 파업을 선언하고, 2시간 동안 530만 명이 동참했다. “여성이 멈추면 사회가 멈춘다”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당시 파업 결과 실제로 열차 300편이 운행을 취소하는 등 사회가 멈췄다.) 북유럽 국가는 국가가 나서 돌봄 노동을 해결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전 세계 사람들은 누군가 아이를, 노인과 아픈 사람을 돌봐야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남편이 해주는 음식에서 사랑을 느낀다. 남자와 여자 모두 돌봄 노동의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페미니즘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제게 페미니즘은 다리 사이에 있는 생물학적 의미가 아닌 양쪽 귀 사이에 있는 지성의 영역이다. 신체의 차이보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중요하다. 페미니즘은 여성만을 존중하자는 운동이 아니다. 성별이나 인종과 관계없이 진정으로 평등 하고자 한다면 남성도 페미니스트라고 할 수 있다. (가부장제에서) 젊은 남성은 좋은 직장을 얻어야 하고 일을 해야 하고 집을 구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여성은 일찍 퇴근하고 아이의 밥을 차려줘야 한다. 그러나 여성도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직장에 가고 콘서트장에 갈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아이를 낳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젊은 남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남녀 갈등은 정부나 외부로부터 해결되지 않는다. 한국의 젊은이 손에 달려있다. 양측의 배려심 있고 현명한 대화가 필요하다. 동성애자나 성 소수자에게서 배울 수도 있고 남아프리카에서 있었던 백인과 흑인 간 갈등에서도 배울 수 있다. 한국은 문화적 힘이 있는 나라다. 남녀의 입장을 담은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서로를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해답이 마법처럼 나오진 않는다. 내가 남편의 음식에서 사랑을 느끼기까지, (다툼으로) 음식이 식탁 위로 던져질 때도 있었다. 엄청난 전투가 있었고 38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진보란 앞으로만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두 걸음 뒤로 갔다가 세 걸음 앞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한국의 젊은 사람들은 그럴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내는 해답을 보고 싶다.
[출처: 중앙일보] 여자 군대가면 남녀갈등 풀릴까…세계적 페미니스트의 명답
이태윤·이우림 기자 lee.tae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