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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년, 육아-라이프 밸런스 ‘육라밸’이 무너졌다

기사

직장맘 52%“돌봄 부담에 퇴사 고민”

106840909.1.gif“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1년이 넘어가니 번아웃(Burnout·소진)이 왔어요. 회사에도 애들한테도 죄책감이 들고…. 우울증 진단까지 받았네요.”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 박지연(가명·44) 씨는 1년째 코로나19 감염의 두려움보다 더 큰 고통에 시달렸다. 바로 ‘자녀 돌봄’이다. 맞벌이인 박 씨는 재택근무 덕에 돌봄 공백은 겨우 면했지만 몸과 정신이 남아나질 않았다.



코로나19 이후 그의 하루는 쉴 틈이 없다. 눈뜨자마자 아이들 끼니 챙기다 보면 해가 저물었다.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인 아이들은 종일 엄마 곁만 맴돌았다. “엄마, 이것 좀.” “엄마, 심심해.” 컴퓨터 앞에 앉기가 무섭게 보채는 아이들. 회사 일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언제부터일까. 박 씨는 점점 신경이 곤두섰다. 아이들에게 내는 짜증도 잦아졌다. 자영업자인 남편은 코로나19로 힘겨운 상황. 새벽에 출근했다 밤 12시쯤 들어와 곯아떨어졌다. 결국 박 씨는 버티다 못해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우울증 치료를 받으셔야 합니다.” 박 씨는 지난달 휴직을 신청했다.



코로나19 1년. 출구가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서 우리네 엄마 아빠들이 지쳐 쓰러지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 장기화로 자녀 돌봄의 한 축인 학교 등 교육·보육 시설이 휴원, 휴교를 반복하며 부모의 돌봄 책임이 절대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서울대 국제이주와 포용사회센터(CTMS)’가 한국갤럽과 함께 만 0∼12세 자녀를 둔 전국의 부모 201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엄마의 주중 평균 돌봄 시간이 전업주부는 14시간 37분, 맞벌이는 5시간 18분이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아빠 역시 주중 평균 2, 3시간씩 부담이 증가했다.



이로 인해 직장을 가진 엄마는 52.4%가 “돌봄 부담에 퇴사를 고민하고 있다”고 답했다. 아빠 역시 3명 가운데 1명꼴(33.4%)로 회사를 관둬야 할지 고민했다. 실제로 설문에 응한 직장인 엄마의 20.2%가 코로나19 이후 직장을 관뒀으며, 이들 가운데 49.2%가 ‘자녀 돌봄을 위해서’라고 답했다. 엄마 32.2%와 아빠의 19.6%는 “코로나19가 더 길어질 경우 휴직하겠다”고 응답했다.



국내에서 코로나19 관련 자녀 돌봄의 고충을 심층 조사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CTMS 센터장인 은기수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코로나19로 사회의 아이 돌봄 기능이 중단되며 가정이 붕괴에 내몰렸다”고 분석했다.

‘돌밥돌밥’ 미로에 갇힌 엄마… 전업주부 육아 하루 8→11시간 급증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육아 부담을 크게 늘렸다. 서울대 국제이주와 포용사회센터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엄마의 주중 평균 자녀돌봄 시간은 맞벌이와 전업주부 모두 크게 늘어났다. 동아일보DB



[코로나 1년, 무너진 육라밸]휴교로 늘어난 돌봄 부담은 엄마 몫

휴교 자녀에 나흘내내 삼시세끼… 잔소리 늘어 자녀와 관계도 나빠져

직장맘 52% 재택근무때도 육아… 아빠 참여 늘었지만 18% 수준

돌봄 맡길 사람 못구한 맞벌이는… 아이들만 집에 있는 상황 벌어져



“전업주부인 친구가 ‘돌밥돌밥’이라더니, 애들 끼니 챙기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요.”



인천에 사는 워킹맘 김경아 씨(44)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재택근무에 들어간 뒤 ‘돌봄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느꼈다. ‘돌아서면 밥 차리고, 돌아서면 밥 차린다’를 줄인 돌밥돌밥은 주부들이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쓰는 신조어. 김 씨도 요즘 “잠깐 자리에 앉아 허리를 펼라치면 밥할 시간이 돌아온다”며 한숨지었다.



“초등학생 2명이 같이 등교하는 날이 딱 하루만 겹쳐요. 나흘 내내 세 끼를 집에서 다 해야 하는 거죠. 새벽부터 서둘러도 아침에 일에 집중할 시간이 1, 2시간밖에 안 나요. 정말 엄마들이 왜 여기저기가 아픈지 알 거 같아요.”



자녀들과의 관계도 이전보다 더 나빠진 느낌이다. 온라인수업을 받다 보니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학습 태도에 잔소리만 늘어갔다. 김 씨는 “그나마 실시간 원격수업은 곧잘 듣고 있는데, 영상만 틀어주는 수업은 애들이 딴짓하기 일쑤”라며 “일을 하다가도 몇 번씩 들어가서 꾸중을 하다 보니 애들도 힘들어한다”고 털어놨다.



재택근무를 하는 입장에서 계속 애들만 챙길 수도 없는 노릇. 김 씨는 결국 최근 아이들을 오후엔 ‘학원 뺑뺑이’를 돌리고 있다. 김 씨는 “코로나19 이전보다 사교육비가 2배 이상 늘어난 거 같다”며 “신체적 피로는 둘째 치고 경제적 정신적 부담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했다.





○ 아이를 돌보는 건 여전히 엄마의 몫




서울대 국제이주와 포용사회센터(CTMS)가 올해 3월 전국 만 0∼12세 자녀를 둔 부모 2016명(남성 1014명, 여성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코로나19와 한국의 아동 돌봄’에서는 부모들의 자녀 돌봄 고충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특히 여전히 아이를 키우는 책임의 무게추가 엄마 쪽으로 기울어진 한국 사회에서 코로나19는 엄마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실제로 자녀의 교육·보육시설이 문을 닫았을 때 ‘낮 시간에 누가 아이를 돌봤느냐’는 질문에 전업주부의 89.2%가 ‘본인’이라고 답했다. 맞벌이인 경우에도 엄마의 32.7%가 자녀를 챙겨야 했다. 맞벌이의 경우 아빠는 11%, 외벌이인 경우엔 아빠의 3%만이 아이를 돌봤다고 말한 것과 큰 차이를 보였다.



물론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할 경우엔 아빠의 돌봄 참여가 확실히 늘어났다. 17.6%가 아이를 돌봤다고 답했다. 하지만 재택근무를 한 직장인 엄마의 52.4%가 아이를 돌봤다고 답한 것과 여전히 격차가 크다.



재택근무마저 할 수 없는 맞벌이 부부는 더욱 고통스러웠다. 경기 고양시에서 다섯 살 쌍둥이를 키우는 최주현(가명·36) 씨는 지난해부터 남편과 매주 돌아가며 연차를 써야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지방에 사는 데다 코로나19 감염 우려에 ‘이모님’도 고용할 수 없었다. 최 씨는 “어린이집은 긴급돌봄을 신청하면 휴원해도 등원시킬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눈치가 보여 쉬운 일이 아니었다”며 “애들을 집에만 내버려둘 수도 없어 주중에 3일은 긴급돌봄 등원하고, 2일은 남편과 내가 연차를 내 아이들을 봤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서울대 조사에서 직장인 부모들의 73%는 사회적 거리 두기에 계속해서 직장에 출근했다고 답했다. 재택근무를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82%가 “직장에서 재택근무를 실시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 “아이 홀로 두고 CCTV 켜놓고 출근”




이렇다 보니 가정에서 보호자도 없이 만 0∼12세의 아동들만 집에 있는 일까지 자주 벌어졌다. 설문조사에 응한 부모의 약 40%가 “최근 3개월 사이에 아이들이 어른 없이 1시간 이상 있었던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물론 대부분 초등학생 이상이긴 했지만, 하루 평균 7시간 이상 아이들끼리만 있었던 경우도 14.2%나 됐다.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을 키우는 엄마 서은미(가명) 씨도 집안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고 아이를 집에 홀로 뒀다고 한다. 서 씨와 남편 모두 아침 일찍 직장에 출근하는 데다 따로 돌봄을 맡길 친척도, 사람도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이 출근길에 나서지만 줄곧 CCTV만 바라보며 마음을 졸인다. 서 씨는 “부부가 먼저 출근하다 보니 아이가 홀로 등교 준비를 한다. 오후에도 애가 집에 혼자 있는데,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이러고 있나 싶어서 운 적이 많다”고 했다.



전업주부의 스트레스도 극심하다. 전업주부는 기존에도 자녀 돌봄의 부담이 집중돼 힘겨웠지만, 코로나19 이후 돌봄 시간이 절대적으로 늘었을 뿐 아니라 일의 강도도 훨씬 커졌다. 설문에 응한 전업주부는 돌봄 시간이 1일 평균 약 3시간씩 늘어 총 11시간에 이르렀다.



아이 셋을 키우는 전업주부 주은혜(가명·45) 씨는 “학교는 긴급돌봄이 맞벌이 부부만 가능하다고 제한한다. 남편은 일에 바빠 육아는 모르쇠로 일관한다”며 “애들한텐 미안하지만 그나마 학원에 가 있을 때가 유일하게 숨을 쉴 수 있는 시간”이라고 하소연했다.



돌봄노동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이토 펭 캐나다 토론토대 사회정책학과 교수는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 상황에선 직장은 부모들이 자녀를 돌보도록 재택근무와 출퇴근 시간 조정 등 유연한 업무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며 “가족을 돌보는 직장인이 일터에서 차별이나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정책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손주 챙기느라… 할머니들 ‘돌봄 감옥살이’




“조부모가 돌봄 지원” 38% 달해

외출도 못해 건강 나빠지기 일쑤



“‘감옥살이’ 하는 것 같아. 출소 날짜만 기다리는.”



맞벌이하는 딸 부부를 대신해 손자들을 보살피는 할머니 조민경 씨(68)는 요즘 온몸에 파스로 도배를 하고 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손자 돌봄을 오롯이 책임지면서 노동의 강도가 극도로 심해졌다.



고등학생이 된 손녀딸은 그나마 낫다. 9세 손자는 끼니는 물론 온갖 놀이도 같이 해줘야 한다. 낯선 컴퓨터 원격수업까지 챙기고 나면 머리가 띵할 정도.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손자들이지만 하루 종일 붙어 있다 보니 갈수록 지쳐간다.



“친구들 못 본 지는 1년이 다 돼가는 것 같아. 노래교실이나 등산 같은 취미생활도 못 해본 지 오래됐지. 애들 수업 들을 땐 물 한 잔 마시러 가는 것도 발소리를 죽여야 해. 감옥이 따로 있나. 꼼짝달싹 못 하니 이게 감옥이지.”



서울대 국제이주와 포용사회센터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한 아동 돌봄 가중으로 피해를 입은 또 다른 주인공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다. 만 12세 이하 자녀를 둔 부모의 약 38%가 “교육·보육시설의 휴원 휴교 기간에 조부모의 지원을 받았다”고 답했다. 연령별로는 60대가 71.1%였으며, 70대 이상도 23.6%나 됐다. 돌봄을 도와준 조부모는 아무래도 할머니(93.7%)로 할아버지(6.3%)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하루 종일 집에 있는 손자들을 돌보는 건 할아버지 할머니에겐 신체적으로도 과도한 업무다. 10세 손녀를 돌보는 할머니 김자옥(가명·75) 씨는 1년 동안 체중이 5kg 이상 빠졌다고 한다. 김 씨는 “원래도 무릎이 안 좋은데 코로나19 이후 통증이 더 심해졌다”며 “외출도 못 하고 운동도 못 하다 보니 무릎이 시큰거려 서 있기도 힘들 정도”라고 털어놨다.





아빠도 안팎 고통… 아내는 “당신만 버냐” 상사는 “네가 애 보냐”


[코로나 1년, 무너진 육라밸]“자녀돌봄 애썼는데” 억울한 아빠

맞벌이 아빠 육아시간 18% 늘어… “일과 병행 너무 힘들다” 토로

직장인 아빠 70% “가정에 미안”… 아빠 64% “피곤”- 47% “화 늘어”

엄마보다 낮지만 무시못할 수준… 전문가 “남성 육아휴직 확대해야”






“어디 가서 말은 못 하지만 솔직히 좀 억울하죠.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터진 뒤엔 육아도 집안일도 많이 하거든요. 최선을 다하는데도 뭐라 그러니….”



6세 딸을 키우는 아빠 안정훈(가명) 씨는 최근 부인의 “좀 더 적극적으로 육아에 참여하라”는 원망에 울컥 서운했다. 안 씨는 지난해 여름부터 줄곧 주 2, 3회씩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집에 있는 날에는 매일 출근하는 부인을 대신해 온종일 자신이 딸을 돌본다. 안 씨는 “코로나19 이전은 몰라도 지금은 가사 일도 많이 한다”며 “서로 힘들다 보니까 자꾸 다툴 일이 느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사정을 모르는 친구들은 ‘재택근무해서 편하겠다’고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아이는 놀아 달라, 챙겨 달라 칭얼대고, 회사는 회사대로 집에서 노는 것 아니냐며 눈치를 준다. 중간 관리자 급이라 할 일은 태산인데 어디에도 제대로 집중을 못 하는 것 같아 스스로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애한테도 미안하죠. 하다못해 놀이터라도 가서 놀아줘야 하는데 집에만 있으니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괜히 저도 와이프나 애한테 신경질을 부리고 있더라고요. 코로나19는 언제 끝날지도 모르겠고, 성격만 버리고 가족 관계만 해치는 게 아닌가 걱정됩니다.”

○ 직장인 아빠 70% “코로나로 가정에 미안”




한국 사회에서 ‘보통 아빠’는 가사나 자녀 문제에서 엄마에게 미안하다. 같이 맞벌이를 해도 아무래도 엄마의 부담이 크다. 하지만 자녀 돌봄에서 아빠 역시 자유롭지는 않다. 특히 코로나19로 부모의 돌봄 책임이 커지며 아빠의 부담도 적지 않게 늘어났다.



서울대 국제이주와 포용사회센터(CTMS)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 아빠의 70.7%가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 기간(2020년 12월∼2021년 2월) 동안 일과 육아의 병행이 너무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맞벌이 아빠의 주중 평균 자녀 돌봄 시간은 코로나19 이전보다 18.4%, 외벌이 아빠도 19.5%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맞벌이인 아빠 박정규(가명·46) 씨는 코로나19 이후에 이전보다 2시간 이른 오전 5시에 일어나 출근하고 있다. 일찍 출근해 일을 하면 일찍 퇴근할 수 있는 ‘유연근로제’를 이용하기 위해서다. 부인이 가게를 하기 때문에 등교가 들쑥날쑥하는 초등학교 2학년 딸을 돌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박 씨는 “그래봤자 하루 한두 시간 더 애를 보는 거지만 주말까지도 ‘혼자만의 시간’이 확 줄어드니 체감하는 힘겨움은 확실히 크다”고 털어놨다.



자녀 돌봄에 제대로 기여하지 못하는 외벌이 아빠도 마냥 편하지는 않다. CTMS 설문조사에서도 직장인 아빠의 70%가 “코로나19 상황에서 가족과 자녀에게 더 신경 쓰지 못해 미안했다”고 토로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직장인 아빠 김현수(가명) 씨도 마찬가지였다. 회사 정책상 지난해도 올해도 재택근무를 거의 한 적이 없다. 결국 전업주부인 부인이 1년 넘게 홀로 자녀를 돌보다시피하는 ‘독박 육아’를 감당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했더니 부인이 불 꺼진 방에서 홀로 울고 있는 걸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김 씨는 “나도 나름 힘들다는 생각에 아내와 다툼이 늘었는데, 이 정도 심각한지 몰랐던 스스로가 너무 한심했다. 너무 미안해서 함께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전했다.

○ “남성의 육아 위한 사회적 대책 마련해야”




이렇다 보니 아빠 역시 코로나19로 인한 스트레스가 엄마만큼 크게 늘어났다. 설문에 응한 아빠들은 64.4%가 ‘코로나19로 평소보다 피곤하다’고 답했다.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는 경우가 더 늘었다’가 46.6%였으며, ‘어디서도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대답도 38.4%나 됐다. 각각 엄마보다는 10∼20% 정도 낮았지만 무시해도 좋을 수치는 아니었다.



자녀 돌봄을 위해 육아휴직이나 재택근무를 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인 아빠들도 적지 않았다. 노승철(가명) 씨는 지난해 말 태어난 아이를 위해 육아휴직을 신청하려 했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회사 분위기 탓에 말도 꺼내기 어려웠다. 노 씨는 “한 동료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아이는 와이프가 낳았는데, 왜 당신이 휴직하느냐’는 핀잔만 돌아왔다”고 말했다.



전지원 서울대 국제이주와 포용사회센터 책임연구원은 “아빠의 돌봄 참여는 돌봄 휴가나 육아휴직을 쓸 때 회사에서 대체 인력을 마련하는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며 “남성 육아휴직이 공기업이나 일부 대기업에 국한되지 않도록 세심한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젊은 아빠들 휴직에 이직까지


MZ세대 “육아도 공정하게 분담을”

2030아빠 39%만 “육아는 엄마 몫”






“육아에 지친 아내도 돕고,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어요.”



11년 차 직장인인 김동길 씨(38)는 지난달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지친 부인의 돌봄 부담을 덜어주고 싶어서다. 게다가 부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좀 더 가족을 제대로 챙겨보자고 뜻을 모았다. 김 씨는 “이것저것 재다가 언제 아이들과 함께하겠냐 싶어 휴직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자녀 돌봄 시간이 늘면서 육아와 가사에 대한 아빠들의 가치관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서울대 국제이주와 포용사회센터의 설문조사에서 ‘아이는 주로 엄마가 돌봐야 한다’는 문항에 20, 30대 아빠들은 39%가 그렇다고 답했다. 여전히 갈 길이 멀지만, 40대(50%)나 50대(62%)보다 확실히 나아진 수치다.



코로나19로 힘겨운 시간이지만 아빠들이 나름대로 노력하는 모습도 나타난다. 맞벌이 아빠의 1일 평균 돌봄 시간은 코로나19 이전 3시간 8분에서 이후 3시간 42분으로 늘었다. 외벌이 아빠도 2시간 28분에서 2시간 57분으로 증가했다. 엄마와 비교하면 한참 부족하지만 개선의 가능성이 엿보인다.



적극적인 공동육아에 나서며 오히려 일을 줄이는 아빠들도 있다. 전업주부로 나선 문희곤 씨(34)는 “한 명은 아이를 돌봐야 하는데 아내 급여가 더 높아 내가 주로 집안일을 담당하기로 했다”며 “육아와 가사는 돕는 게 아닌 함께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 용인에서 아빠 육아모임을 이끄는 정보기술(IT) 개발자 최대훈 씨(39)도 “코로나19로 커진 돌봄 부담을 아내와 공평하게 나누려 한다. 최근 잔업이 적은 회사로 이직을 했다”고 말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치료학과 교수는 “기성세대는 양육의 불공정을 바로잡는 데 적극적이지 못했다. 공동육아는 MZ세대의 ‘공정성’ 중시가 젠더 측면에서도 드러나는 것”이라고 했다.



이윤태 oldsport@donga.com·유채연 기자

코로나 1년, 육아-라이프 밸런스 ‘육라밸’이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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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맘 52%“돌봄 부담에 퇴사 고민”

106840909.1.gif“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1년이 넘어가니 번아웃(Burnout·소진)이 왔어요. 회사에도 애들한테도 죄책감이 들고…. 우울증 진단까지 받았네요.”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 박지연(가명·44) 씨는 1년째 코로나19 감염의 두려움보다 더 큰 고통에 시달렸다. 바로 ‘자녀 돌봄’이다. 맞벌이인 박 씨는 재택근무 덕에 돌봄 공백은 겨우 면했지만 몸과 정신이 남아나질 않았다.



코로나19 이후 그의 하루는 쉴 틈이 없다. 눈뜨자마자 아이들 끼니 챙기다 보면 해가 저물었다.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인 아이들은 종일 엄마 곁만 맴돌았다. “엄마, 이것 좀.” “엄마, 심심해.” 컴퓨터 앞에 앉기가 무섭게 보채는 아이들. 회사 일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언제부터일까. 박 씨는 점점 신경이 곤두섰다. 아이들에게 내는 짜증도 잦아졌다. 자영업자인 남편은 코로나19로 힘겨운 상황. 새벽에 출근했다 밤 12시쯤 들어와 곯아떨어졌다. 결국 박 씨는 버티다 못해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우울증 치료를 받으셔야 합니다.” 박 씨는 지난달 휴직을 신청했다.



코로나19 1년. 출구가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서 우리네 엄마 아빠들이 지쳐 쓰러지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 장기화로 자녀 돌봄의 한 축인 학교 등 교육·보육 시설이 휴원, 휴교를 반복하며 부모의 돌봄 책임이 절대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서울대 국제이주와 포용사회센터(CTMS)’가 한국갤럽과 함께 만 0∼12세 자녀를 둔 전국의 부모 201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엄마의 주중 평균 돌봄 시간이 전업주부는 14시간 37분, 맞벌이는 5시간 18분이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아빠 역시 주중 평균 2, 3시간씩 부담이 증가했다.



이로 인해 직장을 가진 엄마는 52.4%가 “돌봄 부담에 퇴사를 고민하고 있다”고 답했다. 아빠 역시 3명 가운데 1명꼴(33.4%)로 회사를 관둬야 할지 고민했다. 실제로 설문에 응한 직장인 엄마의 20.2%가 코로나19 이후 직장을 관뒀으며, 이들 가운데 49.2%가 ‘자녀 돌봄을 위해서’라고 답했다. 엄마 32.2%와 아빠의 19.6%는 “코로나19가 더 길어질 경우 휴직하겠다”고 응답했다.



국내에서 코로나19 관련 자녀 돌봄의 고충을 심층 조사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CTMS 센터장인 은기수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코로나19로 사회의 아이 돌봄 기능이 중단되며 가정이 붕괴에 내몰렸다”고 분석했다.

‘돌밥돌밥’ 미로에 갇힌 엄마… 전업주부 육아 하루 8→11시간 급증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육아 부담을 크게 늘렸다. 서울대 국제이주와 포용사회센터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엄마의 주중 평균 자녀돌봄 시간은 맞벌이와 전업주부 모두 크게 늘어났다. 동아일보DB



[코로나 1년, 무너진 육라밸]휴교로 늘어난 돌봄 부담은 엄마 몫

휴교 자녀에 나흘내내 삼시세끼… 잔소리 늘어 자녀와 관계도 나빠져

직장맘 52% 재택근무때도 육아… 아빠 참여 늘었지만 18% 수준

돌봄 맡길 사람 못구한 맞벌이는… 아이들만 집에 있는 상황 벌어져



“전업주부인 친구가 ‘돌밥돌밥’이라더니, 애들 끼니 챙기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요.”



인천에 사는 워킹맘 김경아 씨(44)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재택근무에 들어간 뒤 ‘돌봄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느꼈다. ‘돌아서면 밥 차리고, 돌아서면 밥 차린다’를 줄인 돌밥돌밥은 주부들이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쓰는 신조어. 김 씨도 요즘 “잠깐 자리에 앉아 허리를 펼라치면 밥할 시간이 돌아온다”며 한숨지었다.



“초등학생 2명이 같이 등교하는 날이 딱 하루만 겹쳐요. 나흘 내내 세 끼를 집에서 다 해야 하는 거죠. 새벽부터 서둘러도 아침에 일에 집중할 시간이 1, 2시간밖에 안 나요. 정말 엄마들이 왜 여기저기가 아픈지 알 거 같아요.”



자녀들과의 관계도 이전보다 더 나빠진 느낌이다. 온라인수업을 받다 보니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학습 태도에 잔소리만 늘어갔다. 김 씨는 “그나마 실시간 원격수업은 곧잘 듣고 있는데, 영상만 틀어주는 수업은 애들이 딴짓하기 일쑤”라며 “일을 하다가도 몇 번씩 들어가서 꾸중을 하다 보니 애들도 힘들어한다”고 털어놨다.



재택근무를 하는 입장에서 계속 애들만 챙길 수도 없는 노릇. 김 씨는 결국 최근 아이들을 오후엔 ‘학원 뺑뺑이’를 돌리고 있다. 김 씨는 “코로나19 이전보다 사교육비가 2배 이상 늘어난 거 같다”며 “신체적 피로는 둘째 치고 경제적 정신적 부담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했다.





○ 아이를 돌보는 건 여전히 엄마의 몫




서울대 국제이주와 포용사회센터(CTMS)가 올해 3월 전국 만 0∼12세 자녀를 둔 부모 2016명(남성 1014명, 여성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코로나19와 한국의 아동 돌봄’에서는 부모들의 자녀 돌봄 고충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특히 여전히 아이를 키우는 책임의 무게추가 엄마 쪽으로 기울어진 한국 사회에서 코로나19는 엄마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실제로 자녀의 교육·보육시설이 문을 닫았을 때 ‘낮 시간에 누가 아이를 돌봤느냐’는 질문에 전업주부의 89.2%가 ‘본인’이라고 답했다. 맞벌이인 경우에도 엄마의 32.7%가 자녀를 챙겨야 했다. 맞벌이의 경우 아빠는 11%, 외벌이인 경우엔 아빠의 3%만이 아이를 돌봤다고 말한 것과 큰 차이를 보였다.



물론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할 경우엔 아빠의 돌봄 참여가 확실히 늘어났다. 17.6%가 아이를 돌봤다고 답했다. 하지만 재택근무를 한 직장인 엄마의 52.4%가 아이를 돌봤다고 답한 것과 여전히 격차가 크다.



재택근무마저 할 수 없는 맞벌이 부부는 더욱 고통스러웠다. 경기 고양시에서 다섯 살 쌍둥이를 키우는 최주현(가명·36) 씨는 지난해부터 남편과 매주 돌아가며 연차를 써야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지방에 사는 데다 코로나19 감염 우려에 ‘이모님’도 고용할 수 없었다. 최 씨는 “어린이집은 긴급돌봄을 신청하면 휴원해도 등원시킬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눈치가 보여 쉬운 일이 아니었다”며 “애들을 집에만 내버려둘 수도 없어 주중에 3일은 긴급돌봄 등원하고, 2일은 남편과 내가 연차를 내 아이들을 봤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서울대 조사에서 직장인 부모들의 73%는 사회적 거리 두기에 계속해서 직장에 출근했다고 답했다. 재택근무를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82%가 “직장에서 재택근무를 실시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 “아이 홀로 두고 CCTV 켜놓고 출근”




이렇다 보니 가정에서 보호자도 없이 만 0∼12세의 아동들만 집에 있는 일까지 자주 벌어졌다. 설문조사에 응한 부모의 약 40%가 “최근 3개월 사이에 아이들이 어른 없이 1시간 이상 있었던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물론 대부분 초등학생 이상이긴 했지만, 하루 평균 7시간 이상 아이들끼리만 있었던 경우도 14.2%나 됐다.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을 키우는 엄마 서은미(가명) 씨도 집안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고 아이를 집에 홀로 뒀다고 한다. 서 씨와 남편 모두 아침 일찍 직장에 출근하는 데다 따로 돌봄을 맡길 친척도, 사람도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이 출근길에 나서지만 줄곧 CCTV만 바라보며 마음을 졸인다. 서 씨는 “부부가 먼저 출근하다 보니 아이가 홀로 등교 준비를 한다. 오후에도 애가 집에 혼자 있는데,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이러고 있나 싶어서 운 적이 많다”고 했다.



전업주부의 스트레스도 극심하다. 전업주부는 기존에도 자녀 돌봄의 부담이 집중돼 힘겨웠지만, 코로나19 이후 돌봄 시간이 절대적으로 늘었을 뿐 아니라 일의 강도도 훨씬 커졌다. 설문에 응한 전업주부는 돌봄 시간이 1일 평균 약 3시간씩 늘어 총 11시간에 이르렀다.



아이 셋을 키우는 전업주부 주은혜(가명·45) 씨는 “학교는 긴급돌봄이 맞벌이 부부만 가능하다고 제한한다. 남편은 일에 바빠 육아는 모르쇠로 일관한다”며 “애들한텐 미안하지만 그나마 학원에 가 있을 때가 유일하게 숨을 쉴 수 있는 시간”이라고 하소연했다.



돌봄노동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이토 펭 캐나다 토론토대 사회정책학과 교수는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 상황에선 직장은 부모들이 자녀를 돌보도록 재택근무와 출퇴근 시간 조정 등 유연한 업무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며 “가족을 돌보는 직장인이 일터에서 차별이나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정책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손주 챙기느라… 할머니들 ‘돌봄 감옥살이’




“조부모가 돌봄 지원” 38% 달해

외출도 못해 건강 나빠지기 일쑤



“‘감옥살이’ 하는 것 같아. 출소 날짜만 기다리는.”



맞벌이하는 딸 부부를 대신해 손자들을 보살피는 할머니 조민경 씨(68)는 요즘 온몸에 파스로 도배를 하고 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손자 돌봄을 오롯이 책임지면서 노동의 강도가 극도로 심해졌다.



고등학생이 된 손녀딸은 그나마 낫다. 9세 손자는 끼니는 물론 온갖 놀이도 같이 해줘야 한다. 낯선 컴퓨터 원격수업까지 챙기고 나면 머리가 띵할 정도.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손자들이지만 하루 종일 붙어 있다 보니 갈수록 지쳐간다.



“친구들 못 본 지는 1년이 다 돼가는 것 같아. 노래교실이나 등산 같은 취미생활도 못 해본 지 오래됐지. 애들 수업 들을 땐 물 한 잔 마시러 가는 것도 발소리를 죽여야 해. 감옥이 따로 있나. 꼼짝달싹 못 하니 이게 감옥이지.”



서울대 국제이주와 포용사회센터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한 아동 돌봄 가중으로 피해를 입은 또 다른 주인공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다. 만 12세 이하 자녀를 둔 부모의 약 38%가 “교육·보육시설의 휴원 휴교 기간에 조부모의 지원을 받았다”고 답했다. 연령별로는 60대가 71.1%였으며, 70대 이상도 23.6%나 됐다. 돌봄을 도와준 조부모는 아무래도 할머니(93.7%)로 할아버지(6.3%)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하루 종일 집에 있는 손자들을 돌보는 건 할아버지 할머니에겐 신체적으로도 과도한 업무다. 10세 손녀를 돌보는 할머니 김자옥(가명·75) 씨는 1년 동안 체중이 5kg 이상 빠졌다고 한다. 김 씨는 “원래도 무릎이 안 좋은데 코로나19 이후 통증이 더 심해졌다”며 “외출도 못 하고 운동도 못 하다 보니 무릎이 시큰거려 서 있기도 힘들 정도”라고 털어놨다.





아빠도 안팎 고통… 아내는 “당신만 버냐” 상사는 “네가 애 보냐”


[코로나 1년, 무너진 육라밸]“자녀돌봄 애썼는데” 억울한 아빠

맞벌이 아빠 육아시간 18% 늘어… “일과 병행 너무 힘들다” 토로

직장인 아빠 70% “가정에 미안”… 아빠 64% “피곤”- 47% “화 늘어”

엄마보다 낮지만 무시못할 수준… 전문가 “남성 육아휴직 확대해야”






“어디 가서 말은 못 하지만 솔직히 좀 억울하죠.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터진 뒤엔 육아도 집안일도 많이 하거든요. 최선을 다하는데도 뭐라 그러니….”



6세 딸을 키우는 아빠 안정훈(가명) 씨는 최근 부인의 “좀 더 적극적으로 육아에 참여하라”는 원망에 울컥 서운했다. 안 씨는 지난해 여름부터 줄곧 주 2, 3회씩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집에 있는 날에는 매일 출근하는 부인을 대신해 온종일 자신이 딸을 돌본다. 안 씨는 “코로나19 이전은 몰라도 지금은 가사 일도 많이 한다”며 “서로 힘들다 보니까 자꾸 다툴 일이 느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사정을 모르는 친구들은 ‘재택근무해서 편하겠다’고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아이는 놀아 달라, 챙겨 달라 칭얼대고, 회사는 회사대로 집에서 노는 것 아니냐며 눈치를 준다. 중간 관리자 급이라 할 일은 태산인데 어디에도 제대로 집중을 못 하는 것 같아 스스로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애한테도 미안하죠. 하다못해 놀이터라도 가서 놀아줘야 하는데 집에만 있으니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괜히 저도 와이프나 애한테 신경질을 부리고 있더라고요. 코로나19는 언제 끝날지도 모르겠고, 성격만 버리고 가족 관계만 해치는 게 아닌가 걱정됩니다.”

○ 직장인 아빠 70% “코로나로 가정에 미안”




한국 사회에서 ‘보통 아빠’는 가사나 자녀 문제에서 엄마에게 미안하다. 같이 맞벌이를 해도 아무래도 엄마의 부담이 크다. 하지만 자녀 돌봄에서 아빠 역시 자유롭지는 않다. 특히 코로나19로 부모의 돌봄 책임이 커지며 아빠의 부담도 적지 않게 늘어났다.



서울대 국제이주와 포용사회센터(CTMS)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 아빠의 70.7%가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 기간(2020년 12월∼2021년 2월) 동안 일과 육아의 병행이 너무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맞벌이 아빠의 주중 평균 자녀 돌봄 시간은 코로나19 이전보다 18.4%, 외벌이 아빠도 19.5%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맞벌이인 아빠 박정규(가명·46) 씨는 코로나19 이후에 이전보다 2시간 이른 오전 5시에 일어나 출근하고 있다. 일찍 출근해 일을 하면 일찍 퇴근할 수 있는 ‘유연근로제’를 이용하기 위해서다. 부인이 가게를 하기 때문에 등교가 들쑥날쑥하는 초등학교 2학년 딸을 돌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박 씨는 “그래봤자 하루 한두 시간 더 애를 보는 거지만 주말까지도 ‘혼자만의 시간’이 확 줄어드니 체감하는 힘겨움은 확실히 크다”고 털어놨다.



자녀 돌봄에 제대로 기여하지 못하는 외벌이 아빠도 마냥 편하지는 않다. CTMS 설문조사에서도 직장인 아빠의 70%가 “코로나19 상황에서 가족과 자녀에게 더 신경 쓰지 못해 미안했다”고 토로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직장인 아빠 김현수(가명) 씨도 마찬가지였다. 회사 정책상 지난해도 올해도 재택근무를 거의 한 적이 없다. 결국 전업주부인 부인이 1년 넘게 홀로 자녀를 돌보다시피하는 ‘독박 육아’를 감당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했더니 부인이 불 꺼진 방에서 홀로 울고 있는 걸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김 씨는 “나도 나름 힘들다는 생각에 아내와 다툼이 늘었는데, 이 정도 심각한지 몰랐던 스스로가 너무 한심했다. 너무 미안해서 함께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전했다.

○ “남성의 육아 위한 사회적 대책 마련해야”




이렇다 보니 아빠 역시 코로나19로 인한 스트레스가 엄마만큼 크게 늘어났다. 설문에 응한 아빠들은 64.4%가 ‘코로나19로 평소보다 피곤하다’고 답했다.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는 경우가 더 늘었다’가 46.6%였으며, ‘어디서도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대답도 38.4%나 됐다. 각각 엄마보다는 10∼20% 정도 낮았지만 무시해도 좋을 수치는 아니었다.



자녀 돌봄을 위해 육아휴직이나 재택근무를 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인 아빠들도 적지 않았다. 노승철(가명) 씨는 지난해 말 태어난 아이를 위해 육아휴직을 신청하려 했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회사 분위기 탓에 말도 꺼내기 어려웠다. 노 씨는 “한 동료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아이는 와이프가 낳았는데, 왜 당신이 휴직하느냐’는 핀잔만 돌아왔다”고 말했다.



전지원 서울대 국제이주와 포용사회센터 책임연구원은 “아빠의 돌봄 참여는 돌봄 휴가나 육아휴직을 쓸 때 회사에서 대체 인력을 마련하는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며 “남성 육아휴직이 공기업이나 일부 대기업에 국한되지 않도록 세심한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젊은 아빠들 휴직에 이직까지


MZ세대 “육아도 공정하게 분담을”

2030아빠 39%만 “육아는 엄마 몫”






“육아에 지친 아내도 돕고,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어요.”



11년 차 직장인인 김동길 씨(38)는 지난달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지친 부인의 돌봄 부담을 덜어주고 싶어서다. 게다가 부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좀 더 가족을 제대로 챙겨보자고 뜻을 모았다. 김 씨는 “이것저것 재다가 언제 아이들과 함께하겠냐 싶어 휴직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자녀 돌봄 시간이 늘면서 육아와 가사에 대한 아빠들의 가치관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서울대 국제이주와 포용사회센터의 설문조사에서 ‘아이는 주로 엄마가 돌봐야 한다’는 문항에 20, 30대 아빠들은 39%가 그렇다고 답했다. 여전히 갈 길이 멀지만, 40대(50%)나 50대(62%)보다 확실히 나아진 수치다.



코로나19로 힘겨운 시간이지만 아빠들이 나름대로 노력하는 모습도 나타난다. 맞벌이 아빠의 1일 평균 돌봄 시간은 코로나19 이전 3시간 8분에서 이후 3시간 42분으로 늘었다. 외벌이 아빠도 2시간 28분에서 2시간 57분으로 증가했다. 엄마와 비교하면 한참 부족하지만 개선의 가능성이 엿보인다.



적극적인 공동육아에 나서며 오히려 일을 줄이는 아빠들도 있다. 전업주부로 나선 문희곤 씨(34)는 “한 명은 아이를 돌봐야 하는데 아내 급여가 더 높아 내가 주로 집안일을 담당하기로 했다”며 “육아와 가사는 돕는 게 아닌 함께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 용인에서 아빠 육아모임을 이끄는 정보기술(IT) 개발자 최대훈 씨(39)도 “코로나19로 커진 돌봄 부담을 아내와 공평하게 나누려 한다. 최근 잔업이 적은 회사로 이직을 했다”고 말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치료학과 교수는 “기성세대는 양육의 불공정을 바로잡는 데 적극적이지 못했다. 공동육아는 MZ세대의 ‘공정성’ 중시가 젠더 측면에서도 드러나는 것”이라고 했다.



이윤태 oldsport@donga.com·유채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