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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나는 효행상이 불편하다

사설ㆍ칼럼

매년 특정 시기에 맞춰 나오는 이른바 ‘캘린더성 기사’들이 있다.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늘 무심히 넘기다가 올해는 끝내 울컥하고 말았다. 나의 현실과 미래, 청년·자녀 세대의 미래 등이 겹쳐 보여서다.

정부가 어버이날을 맞아 포상하는 효행자상 얘기다. 49회째인 올해는 101세 노모의 손과 발이 되어 정성으로 봉양한 70세 아들 택시기사가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다. 국민포장을 수상한 60대 여성은 편찮으신 홀아버지와 형제들을 30년간 돌봐왔으며, 지적장애 아들 양육과 92세 시어머니 돌봄 등에 헌신했다. 지난해, 5년 전, 10년 전도 그리 다르지 않다. 보건복지부 홈페이지에 올라온 전형적인 공적사항 몇 가지를 옮기면, “치매를 앓는 시부모님을 직접 봉양” “24시간 곁에서 대소변을 받아내는 등” “아픈 남편과 자녀들을 부양하며, 암 투병 중인 부친을 봉양” “행복한 가정을 위해 헌신” 등이다. 길게는 30~40년 한결같은 헌신으로 수상한 효행자 다수는 60~70대 여성들이다. 마땅히 칭찬받을 행실이지만, 상의 취지 효행을 북돋우고 널리 퍼뜨리는 것이라면 따라할 엄두조차 꺾는다는 점에서 효과는 의문이다. 내 주변 상황과는 동떨어진 비현실적인 사연들이어서다.

최근 부모님이 편찮으셔서 병원 정기 검진을 받아야 할 목록이 하나둘 늘고 있다. 부모님 댁과, 또 병원까지의 거리가 꽤 멀어서 다녀오려면 최소 한나절, 길게는 하루가 걸린다. 일하며 아이들 키우느라 고군분투하는 맞벌이 부부 삼남매가 순번을 정해 연·월차를 쓰며 한 달에 한두 번 부모님을 찾아뵙고 병원에 가는 것만 해도 녹록지 않다. 부모를 돌볼 수 없는 상황이나 조손가정은, 또 앞으로 대세인 1인 가구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2년 전 경향신문의 <노인돌봄 누구의 몫인가> 기획기사는 이미 안으로 곪고 있는 가족들의 실상을 드러냈다. ‘노인·아동돌봄조사’ 연구에서 주돌봄자들은 “삶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긴 줄을 곡예하듯이 가고 있다” “노인을 돌보다 함께 죽는 이들이 이해가 된다”는 위태로운 심경을 털어놓는 이도, 우울증 약을 복용하며 버티고, 직장을 그만두고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는 이들도 있었다.

올해 1인 가구가 전체의 40%에 육박하고, 4인 이상 가구는 처음 10%대(19.6%)로 떨어졌다. 자녀가 부모를 봉양하는 전통적인 노인돌봄은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해지고 있다. 부모부양은 가족과 부모 본인,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가족 책임이라는 응답은 2002년 71%에서 2018년 27%로 급감했다. 결혼했든 안 했든, 가족 수가 몇이든, 가까이 살든 멀리 살든 가족과 사회가 책임과 부담을 어떻게 공평하게 나눌지 ‘노인돌봄 대토론·대타협’이 필요하다.

핀란드 기자 출신 필자가 미국 남성과 결혼 후 두 사회를 비교한 책 <우리는 미래에 조금 먼저 도착했습니다>가 통찰을 준다. ‘사랑에 관한 노르딕 이론’의 핵심은 “진정한 사랑과 우정은 독립적이고 동등한 개인 사이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이라고 한다. 그래서 노르딕 사회의 목표는 개인을 가족이나 시민사회 내 모든 형태의 경제적 또는 여타의 의존에서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가령, 필수적인 노인돌봄은 요양사, 간호사 등 전문가와 지자체가 담당하고, 시민들은 자기 생활에 충실하며 세금을 내고 부모와 식사나 대화, 원하는 일을 함께하며 친밀함 나누기에 집중한다. 무릎을 쳤다. “서로 지나치게 희생하지 않을 때 순수한 애정과 보살핌을 베풀 수 있다”는 대목에 100% 공감이 간다. 아무리 가까운 관계여도 내 일상, 내 존재까지 허물어질 정도면 관계 자체가 위협받는다.

가정의달 내내 중앙정부뿐 아니라 광역시·도, 기초지자체에서까지 수백명의 효행자 포상이 쏟아졌다. 2008년부터는 ‘효행장려 및 지원에 관한 법률’까지 시행되고 있다는 사실도 글을 쓰며 처음 알았다. ‘효행을 통하여 고령사회가 처하는 문제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가 법의 목적이다. 더 이상 ‘고령사회가 처하는 문제 해결’을 효행상, 효행법으로 묶어놔선 안 된다. 대신 실질적인 부담과 걱정을 덜어줄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돌봄일자리를 확대하고 전문성과 처우를 높여 돌봄의 질을 높이도록, 자녀들이 회사냐 돌봄이냐를 고민하지 않고, 불효라는 죄책감 혹은 효자·효녀라는 굴레를 벗고 안심하고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온 ‘노인 시민’들이 자녀의 자비에 맡겨지지 않고 쾌적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말이다. 돌봄으로 쓰러지는 모든 가정을 구하는 길이다.

송현숙 논설위원 [email protected]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2105270300085#csidxa852de77654b944ac57303207bea530 onebyone.gif?action_id=a852de77654b944ac57303207bea530

[경향의 눈]나는 효행상이 불편하다

사설ㆍ칼럼

매년 특정 시기에 맞춰 나오는 이른바 ‘캘린더성 기사’들이 있다.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늘 무심히 넘기다가 올해는 끝내 울컥하고 말았다. 나의 현실과 미래, 청년·자녀 세대의 미래 등이 겹쳐 보여서다.

정부가 어버이날을 맞아 포상하는 효행자상 얘기다. 49회째인 올해는 101세 노모의 손과 발이 되어 정성으로 봉양한 70세 아들 택시기사가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다. 국민포장을 수상한 60대 여성은 편찮으신 홀아버지와 형제들을 30년간 돌봐왔으며, 지적장애 아들 양육과 92세 시어머니 돌봄 등에 헌신했다. 지난해, 5년 전, 10년 전도 그리 다르지 않다. 보건복지부 홈페이지에 올라온 전형적인 공적사항 몇 가지를 옮기면, “치매를 앓는 시부모님을 직접 봉양” “24시간 곁에서 대소변을 받아내는 등” “아픈 남편과 자녀들을 부양하며, 암 투병 중인 부친을 봉양” “행복한 가정을 위해 헌신” 등이다. 길게는 30~40년 한결같은 헌신으로 수상한 효행자 다수는 60~70대 여성들이다. 마땅히 칭찬받을 행실이지만, 상의 취지 효행을 북돋우고 널리 퍼뜨리는 것이라면 따라할 엄두조차 꺾는다는 점에서 효과는 의문이다. 내 주변 상황과는 동떨어진 비현실적인 사연들이어서다.

최근 부모님이 편찮으셔서 병원 정기 검진을 받아야 할 목록이 하나둘 늘고 있다. 부모님 댁과, 또 병원까지의 거리가 꽤 멀어서 다녀오려면 최소 한나절, 길게는 하루가 걸린다. 일하며 아이들 키우느라 고군분투하는 맞벌이 부부 삼남매가 순번을 정해 연·월차를 쓰며 한 달에 한두 번 부모님을 찾아뵙고 병원에 가는 것만 해도 녹록지 않다. 부모를 돌볼 수 없는 상황이나 조손가정은, 또 앞으로 대세인 1인 가구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2년 전 경향신문의 <노인돌봄 누구의 몫인가> 기획기사는 이미 안으로 곪고 있는 가족들의 실상을 드러냈다. ‘노인·아동돌봄조사’ 연구에서 주돌봄자들은 “삶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긴 줄을 곡예하듯이 가고 있다” “노인을 돌보다 함께 죽는 이들이 이해가 된다”는 위태로운 심경을 털어놓는 이도, 우울증 약을 복용하며 버티고, 직장을 그만두고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는 이들도 있었다.

올해 1인 가구가 전체의 40%에 육박하고, 4인 이상 가구는 처음 10%대(19.6%)로 떨어졌다. 자녀가 부모를 봉양하는 전통적인 노인돌봄은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해지고 있다. 부모부양은 가족과 부모 본인,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가족 책임이라는 응답은 2002년 71%에서 2018년 27%로 급감했다. 결혼했든 안 했든, 가족 수가 몇이든, 가까이 살든 멀리 살든 가족과 사회가 책임과 부담을 어떻게 공평하게 나눌지 ‘노인돌봄 대토론·대타협’이 필요하다.

핀란드 기자 출신 필자가 미국 남성과 결혼 후 두 사회를 비교한 책 <우리는 미래에 조금 먼저 도착했습니다>가 통찰을 준다. ‘사랑에 관한 노르딕 이론’의 핵심은 “진정한 사랑과 우정은 독립적이고 동등한 개인 사이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이라고 한다. 그래서 노르딕 사회의 목표는 개인을 가족이나 시민사회 내 모든 형태의 경제적 또는 여타의 의존에서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가령, 필수적인 노인돌봄은 요양사, 간호사 등 전문가와 지자체가 담당하고, 시민들은 자기 생활에 충실하며 세금을 내고 부모와 식사나 대화, 원하는 일을 함께하며 친밀함 나누기에 집중한다. 무릎을 쳤다. “서로 지나치게 희생하지 않을 때 순수한 애정과 보살핌을 베풀 수 있다”는 대목에 100% 공감이 간다. 아무리 가까운 관계여도 내 일상, 내 존재까지 허물어질 정도면 관계 자체가 위협받는다.

가정의달 내내 중앙정부뿐 아니라 광역시·도, 기초지자체에서까지 수백명의 효행자 포상이 쏟아졌다. 2008년부터는 ‘효행장려 및 지원에 관한 법률’까지 시행되고 있다는 사실도 글을 쓰며 처음 알았다. ‘효행을 통하여 고령사회가 처하는 문제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가 법의 목적이다. 더 이상 ‘고령사회가 처하는 문제 해결’을 효행상, 효행법으로 묶어놔선 안 된다. 대신 실질적인 부담과 걱정을 덜어줄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돌봄일자리를 확대하고 전문성과 처우를 높여 돌봄의 질을 높이도록, 자녀들이 회사냐 돌봄이냐를 고민하지 않고, 불효라는 죄책감 혹은 효자·효녀라는 굴레를 벗고 안심하고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온 ‘노인 시민’들이 자녀의 자비에 맡겨지지 않고 쾌적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말이다. 돌봄으로 쓰러지는 모든 가정을 구하는 길이다.

송현숙 논설위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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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2105270300085#csidxa852de77654b944ac57303207bea530 onebyone.gif?action_id=a852de77654b944ac57303207bea530